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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은빛여울
2019. 7. 2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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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ie ◈ What Can I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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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생명력을 찾아… 순수로의 회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유언의 사연은 갖가지일 테지만,
고갱은 화가답게 유언을 그림으로 남겼다.
사랑하는 딸 알린느가 죽었다는 소식을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듣고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한 뒤,있는 힘을 다해 그린 유언이 그의 생애 최대의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우리는 무엇이며,어디로 가는가'이다.
기도했던 자살은 실패로 끝나고,
'회화적 유언'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오늘에 전한다.
습작 데생을 거치지 않고 고갱은 직접 캔버스에 그린 이작품은,
고갱의 오랜 사색과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른 쪽에 그려진 노인과 여인, 아이들을 통해 그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운데에 위치해 열매를 따려고 하는 중앙의 남자를 통해서는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We Hail Thee Mary (1891)
화면 왼쪽 아래 쓰여진 글이 그대로 그림의 제명이 되었는데
그것은 타히티섬의 마오리족의 말로 <아름다운 마리아>라는 수태고지를 알리는 천사의 부름소리라고 한다.
실제로 화면에는 안쪽에 있는 꽃나무 그늘에 천사의 모습이 보인다.
고갱은 종교적인 테마로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타히티인들의 생활모습을 표현하려한 것이다
'문명의 속박을 혐오하는 야만인'이 되고자 했던
고갱의 그 파란만장한 삶의 외로운 역정이 눈앞에 어려왔고,
21세기 문명을 향해 울려오는 궁극적 질문이 있었다.
원시와 야성적인 삶을 지향했던 고갱의 반문명적 행로는
곧 '몸'의 슬픈 행로에 다름없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The Loss of Virginity (1890-1)
세기말로 접어들던 1891년 4월 4일,고갱은 오염된 '문명의 몸'을
벗어 버리고 자연의 순수한 '원시의 몸'을 찾기 위해 타히티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마저 남겨두고 오로지 자신이 동경했던
원시의 이상향을 그리며 홀로 떠나는 운명적인 항해였다.
그가 혐오한 '문명의 몸'이란 산업화와 자본주의,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형성된
그 당시 프랑스 파리의 도시와 도시문화의 인공적인 환경에 길들여진
'인공의 삶'이었다. 기차가 가져온 교통의 변화,유리와 강철로 된 건물들,
가스등과 전깃불,백화점의 쇼윈도와 쇼핑 등 인공의 도시에 넘쳐 나는
물질위주의 감각적 쾌락주의와 찰나적 삶이 주는 공허함이었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At the Cafe (1888)
그는 문명의 이기가 가져온 '인공의 삶'에 동화되길 거부하고,
'자연의 삶'을 찾아 서구문명의 밖으로 탈출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이 외로운 한 '고귀한 야만인'의 행로에 의해 20세기를 풍미한
프리미티비즘(원시주의·Primitivism)이 전개될 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그림]Paul Gauguin(1848~1903) ◈Les Miserables (1888)
고갱은 두 달이 넘는 항해 끝에 꿈에 그리던 타히티의 파페에테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원생적인 타히티의 '향기'를 맡으며
원주민과 다름없는 생활속에서 화폭에 그 생생한 '야성적 상상력'을 펼쳐 나갔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Femmes de Tahiti OR Sur la plage(1891)
열대지방의 눈부신 태양과 화창한 날씨,
풍요한 자연의 청순한 공기와 신선한 색채,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산호초,아롱지는 수면과 파도,
야자수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질박한 오두막의 삶,
구릿빛 피부의 벌거숭이 몸과 투박한 손과 맨발,
태고의 정적이 감도는 원시림,열대의 밤과 고요,
그리고 티없는 웃음 속에서 고갱은 더할 나위없는 평화를 누리면서,
스스로 '나는 다시 태어 난 것이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Riders on the Beach (1902)
나의 생명속에 순수하고 힘있는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나는 이미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마오리 사람이며 원시인이었다.
고양되는 승리와 회춘(回春)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The Yellow Christ (Le Christ jaune)(1889)
'원시의 몸'으로 체험한 자연과 인간을 화폭 위에 그리되
그대로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단순성의 암시적 형상,
직접성에 호소하는 평면적인 화법,대조적인 색채효과로 신비성을 띠게 했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Market Day (1892)
그간의 성과를 알릴 겸 천신만고 끝에 1893년 귀국하여 작품전을 가졌으나
호기심 이외에는 몰이해와 냉대뿐이었고,그는 이미 완전한 '이방인의 몸'이었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Two Tahitian Women (1899)
드디어 그는 영원히 파리와 결별하기로 작정하고
1895년 6월 28일 다시 타히티를 향해 떠난다.
되돌아와서 본 타히티는 그동안 문명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해 실망을 주었으며,
거기다 생활고와 건강도 나빠져 지칠대로 지친 상태가 되었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Spirit of the Dead Watching (1892)
설상가상으로 1897년 5월에는 끔직히 사랑했던 딸 마저 사망했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심한 충격 속에 고독과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더 이상 생애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고,
마음에 품어왔던 대작을 완성한 뒤 스스로 죽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우리는 무엇이며,어디로 가는가'(1897,141×376cm 유채)는
이러한 생의 처절한 절망 속에서 출현하였다.
화면의 구성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되는 탄생(과거),삶(현재),죽음(미래)의 3부작으로
인간운명의 행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림은 올이 굵고 고르지 않은 자루용 마포 위에다 그렸기 때문에 거친 화면이다.
그러나 투명 유채법을 쓴 탓으로 더 없이 침잠한 가운데 신비로운 빛을 머금고 있으며,
옆으로 긴 장대한 화면은 마치 '황금빛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를 연상케 한다.
[그림]Paul Gauguin(1848~1903) ◈Nevermore (1897)
한 달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작품에 매달려 남은 정력을 송두리째 여기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작품속에 던진 이 근본적인 질문에는 보이지 않는
'영원의 몸'에 대한 궁극의 의문이 내포되어 있다. '오고 가는 나는 누구인가'.
[그림]Paul Gauguin(1848~1903) ◈Self-Portrait with the Yellow Christ (1889-90)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은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페루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유년기를 외가인 페루 리마에서 보냈으며,
17세때 해군에 입대하여 순양함을 타고 6년 동안
남미 지중해 북극해를 항해하며 미지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주식중개인이며 인상파 작품수집가로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일요화가였으나 5회 인상파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실직하면서부터 작품 생활에만 전념하였으며,
인상파가 지닌 감각적 현실인식에 한계를 느끼고
내면적 정신성과 상징성을 지닌 종합주의를 주창하였다.
타히티의 체험을 기록해 엮은 '노아 노아'가 있으며,
그의 화풍은 보나르 마티스 피카소 등 현대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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