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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황매.비파

은빛여울 2008. 7. 29. 16:18

  
  노랗게 익어가는 매실인 황매. 이것이라야 제대로 우메보시를 만든다.
 
黃梅는 '노랗게 익은 梅實(매실)'이란 뜻. 黃梅雨는 그래서 梅實이 노랗게 익을 무렵 내리는 비 즉, '장맛비'를 가리킨다. 콕 짚어서 '夏至(하지)날에 내리는 비'를 黃梅雨라 하기도 한다

 

. 푸른 매화나무 열매를 靑梅(청매)라 한다. 아직 익지 않은 녀석이다.

 靑梅는 시장에 나온 지 달포도 더 되었다.

 

이제 노랗게 익은 黃梅가 나올 차례. 靑梅와 黃梅가 자연의 색깔이라면 사람 손길을 보탠 인공의 색깔도 있다.

 

 烏梅(오매)와 白梅(백매)가 바로 그것. 靑梅의 씨를 빼고 연기에 그을려 말린 것이 까마귀처럼 새까맣다고 烏梅, 靑梅를 소금에 절여 脫色(탈색)한 것이 하얗다고 白梅이다.

 

 靑白赤黑黃(청백적흑황) 五方色(오방색)은 동양인이 기본이라 생각한 색깔. 각각 東西南北中央(동서남북중앙) 다섯 방위의 색깔이라 해서 五方色이다.

 

 梅實의 색깔도 푸르고 누런 자연의 색깔과 희고 검은 인공의 색깔을 갖췄다. 그럼 붉은색은?

붉은색의 梅實도 있다.

바로 우메보시(梅干·매간)라는 일본 장아찌.

 梅實을 소금에 절였다 말렸다 반복하여 만든다. 소금에 절일 때 蘇葉(소엽) 즉, 차조기 잎을 섞어 준다.

 

蘇葉은 紫蘇(자소)라고도 하는 보랏빛 풀. 절이면 보라색이 옅어져 붉게 된다. 蘇葉은 따뜻한 성질이라 땀을 내주고 속을 가라앉히는 藥性(약성)이 있다.

 

 少陰人(소음인)이 대부분인 일본인 체질에 안성맞춤. 많은 이들이 靑梅를 절여 우메보시를 만든다고 오해한다.

 

하나, 우메보시는 黃梅로 만드는 것이 원칙. 건강을 생각해서 우메보시를 만들어 보시려는 분은 장맛비가 숙지근한 틈에 매화나무를 털 일이다.
 
제철을 맞은 비파나무 열매. 속을 열어보면 용안처럼 생긴 씨앗을 품고 있다.
 


枇杷는 '비파'라는 과일나무와 열매를 가리키는 말. 지난주부터 곳곳의 여염집 뜰에 비파가 샛노랗게 익었다. 중국과 일본의 따뜻한 지방 원산이고 이 땅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643년 일본 가는 通信使(통신사) 일행은 글쓰기를 좋아한 사람들이었던가 보다. 여러 사람이 기록을 남겼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쓴 癸未東日記(계미동사일기)에 枇杷를 먹어본 기록이 나온다.

 

음력 4월 24일 부산을 떠난 通信使 일행은 거친 風浪(풍랑) 때문에 5월 1일에야 쓰시마(對馬島·대마도)에 도착한다.

 

일행은 5월 10일 쓰시마에서 평생 처음 枇杷를 맛보았단다. 通信副使(통신부사) 자리에 있던 趙絅(조경)이란 사람도 東錄(동사록)이란 책에서 枇杷를 맛본 정경을 생동감 넘치는 시로 남겼다. '고루 동그란 게 용안과 비슷하고(均圓似龍目) 차고 달기가 연근보다 나으며(冷甘井蓮避) 탁 터지는 게 포도보다 더한데(發蒲萄僕) 깨물어 보니 입에 침이 절로 나고(經齒口生津) 목구멍을 넘기니 가슴이 후련하네(下咽胸自澹)'. 보기만 해도 저절로 군침이 돈다.

枇杷는 다른 꽃이나 나무가 시들어버린 겨울에 꽃이 피고 여름에 익는 희한한 과일나무. 예전 아이들 교재인 千字文(천자문)에 '枇杷晩翠 梧桐早凋(비파만취 오동조조)'란 구절이 있다. '비파나무는 늦겨울에도 푸른 빛깔이며 오동나무는 일찍 시든다'라는 뜻.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라는 論語(논어)의 말은 여기 枇杷晩翠와 마찬가지 뜻이다.

진짜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했던가. 어려움을 겪어봐야 그이가 진국인지 아닌지 안다는 말이겠다.

桑實은 '뽕나무 열매' 즉, 오디다. 오디는 본래 (오디 심)이라는 글자가 따로 있다. 單音(단음) 즉, 홑소리로만 쓰는 말은 세월이 흐를수록 적어지는 것이 한자말의 법칙. 그래서 요즘은 桑實이라 쓰는 게 보통이다. 桑椹(상심) 또는 桑심子(상심자)도 오디를 가리키는 말. 이처럼 複音(복음) 즉, 겹소리의 단어가 이제 한자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桑實의 어머니 뽕나무는 그야말로 버릴 것 없는 신기한 나무. 뽕잎은 桑葉(상엽) 蠶葉(잠엽)이라 하여 비단실을 뱉어내는 누에의 먹이다. 어린가지는 桑枝(상지), 뿌리껍질은 桑白皮(상백피)라 한다. 모두 약재다. 桑枝는 신경통, 桑葉은 해열, 桑椹子는 강장 발모촉진 및 빈혈 예방, 桑白皮는 이뇨 고혈압에 효과가 있단다. 뽕나무 고목에서 자라는 桑黃(상황)은 버섯의 일종. 가장자리가 누런색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항암 효과가 있다고 유명해졌고 술까지 빚는 지경이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 옅은 연두색 열매가 빨갛게 되고 검은색으로 익는다.
 
說文解字(설문해자)가 桑을 '누에가 먹는 잎사귀 나무(蠶所食葉木)'라고 풀었지만 본디 神木(신목)을 뜻하는 말. 지금은 桑이 木(나무 목) 부수에 들어 있지만 원래는 桑의 윗부분 즉, 又(우)가 세 개 겹친 글자('약'이라 읽는다)를 부수로 한다. '약'은 해가 처음 떠오르는 榑桑(부상)이라 했다. 扶桑(부상)이라고도 쓰는 榑桑은 해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는 神木이라고 山海經(산해경)은 말한다. 桑은 그래서 '해 나무'라 하겠다. 검은색 오디가 시장에 나오고 있다. 해에는 三足烏(삼족오), 즉 '세 발 까마귀'가 산다고 믿었는데 검은색 오디는 까마귀의 반짝이는 깃털 색을 꼭 닮았다.
임형석의 한자 歲時記 <112> 甘 藷
달    감(甘-0)
사탕수수  저(艸-16)

 
  
  고흐의 1885년 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 19세기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감자바우'였다.
 
甘藷는 쪄도 먹고 삶아도 먹는 '감자'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이어 붙여 '감저'라 읽는 듯하나 '감자'라 읽어야 옳다. 馬鈴薯(마령서) 洋藷(양저) 北甘藷(북감저) 北藷(북저) 北甘(북감) 土甘藷(토감자) 地藷(지저)는 甘藷의 다른 말.

馬鈴薯는 馬鈴 즉, 말의 목에 다는 말방울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고 洋藷는 서양인들이 가지고 들어왔다고 붙인 이름이다. 北이라는 말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북쪽 지방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甘藷를 가리키는 말 중에 흥미로운 것은 '디과'라는 사투리. 地瓜(지과)에서 온 말인 듯하다. 地瓜는 중국말로 '띠꽈'라고 읽고 고구마라는 뜻. 남쪽에서 甘藷보다 먼저 들어온 고구마 덕분에 甘藷가 디과로 불렸으리라 짐작된다. 어쩌다 혼선이 빚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 이밖에 甘藷와 글자도 비슷하고 소리도 헷갈리는 甘蔗(감자)는 사탕수수, 柑子(감자)는 귤을 가리키는 말이다.

甘藷는 본디 南(남)아메리카의 高山(고산) 지대인 안데스 산맥이 원산인 식물. 먼 바닷길을 돌아온 甘藷는 고향처럼 서늘한 곳을 좋아한다. 요새야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철이른 甘藷가 일찍 시장에 나오지만 강원도처럼 기온이 낮은 곳에서 여름에 난다. 지금 같은 夏至(하지) 무렵이 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