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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新裙,임형석교수님

은빛여울 2008. 7. 29. 14:57

임형석의 한자 歲時記 <130> 書新裙
쓸 서(日-6) 새 신(斤-9) 치마군(衣-7)

 
  
  디자이너 이상봉의 작품. 옷이 글씨의 주인이 된 '패션의 시대'다운 물건이다.
 
書新裙은 '새로 빤 치마에 글씨를 쓰다'란 뜻.

중국 남북조시대 사람인 羊欣(양흔)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아버지 덕분에 王獻之(왕헌지)를 알게 되었다.

 천하 명필 王羲之(왕희지)의 일곱째 아들 王獻之는 자신도 명필이라 이름난 사람. 王獻之는 글씨 잘 쓰는 少年(소년)을 귀여워했다.

 

어느 여름날 少年은 새로 빨아 다듬질한 비단 치마를 입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王獻之는 살며시 글씨 몇 폭을 치마에 써두고 갔단다. 羊欣이 나중에 글씨를 보고 열심히 익혀 大成(대성)한 것은 당연한 일.

 

衣裳(의상)은 겉옷을 통틀어 부르는 말.

上衣下裳(상의하상)은 '저고리와 치마'란 뜻이다.

 

윗도리에 입는 옷이 衣,

아랫도리에 입는 옷이 裳이다.

裳과 裙은 모두 치마이지만 裳이 더 오래된 치마. 여러 갈래로 터진 치마이다.

 

 중국 전통 衣裳으로 유명한 치파오(旗袍·기포) 같은 치마가 裳이다.

비단은 글씨를 쓰는 가장 좋은 바탕.

비단으로 만든 치마에 남자들이 情表(정표)로,

豪氣(호기)로 글씨를 써주는 허튼 경우가 많았다.

 

 하나, 丁若鏞(정약용) 선생의 霞被帖(하피첩)은 뭉클한 사연을 담은 치마 글씨. 선생은 전라도 康津(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아내가 부쳐온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받았다.

 

 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들.

 어찌할까 하다가 가위질한 뒤 두 아들에게 警戒(경계)가 될 만한 말을 적어 보내주었다.

 

이것이 '노을빛 치마로 만든 책' 霞被帖이다.

쓰고 남은 치마 한 폭은 시집간 딸에게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나중에 보내주었단다. 불행한 가장의 행복한 가족 사랑이라 하겠다.
 
임형석의 한자 歲時記

 

옛조상님들의 글씨공부는 낭만스러운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