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에 가 보았다.
바다는 그저 언제나 좋다.
눈앞에 걸치적거리는 아무것도 없다는것만으로 족하다.
바람에 실려오는 바다내음은 또 어떤가.
콧구멍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질리지도 물리지도 않는다.
절 부근에 가서 인근의 풍경과
작은 풀꽃들 찾아 돌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다 간다.
생각난김에 나도 오늘은...
모자벗고 선그라스 벗고 숄더백 내려놓고
대충 공손하게 내 식으로 허리를 굽히려는순간
친절한 불자 한분이 자기를 따라 하라고 한다.
팔은 여기에 엉덩이를 들고 어쩌고 대충 따라하면서
머릿속엔 일행들이 기다릴까봐 얼른 나가야지 하는 생각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 절만하는건 안하니만 못한건 아닐까.
동백이 너무 예뻐서 찍었지만 마음에 안든다.
마치 딸기처럼 봉우리가 예뻤지만 흐릿해서 손좀 봤더니 더 이상하네.
작은 넘이 혹시 그 식당 이름이 '황소 '아이데요? 한다.
소문난 집이 맞긴 한갑다.
일본분이 게장 백반으로 식사를 했는지 조금 궁금했다.
마침 밖에 있다가 마주쳤길래
'오이시이 데스까?"
'좃또..'
뒷말은 기억이 안난다.
일본어 배운다꼬 소문낸 죄로 창피스러웠다.
'옥스리 오 노미마스까?'
'다이조브 데스까?'
적절한 걱정을 해준거만 해도 어딘가?
자신감없이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긴 해도.^^
내가 만약 일본갔을때 우리 말로 그 두가지 한국말을 들었다면
그것만해도 감개무량 할것 같단 말이다.
이 두가지 빼고 나면 밑반찬 너무 부실하고 성의없어.
네사람 몫으로 나온 게를 둘이만 먹다싶이 해서 남았다.
아깝더라.^^
항일암은 어떤곳인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에 있는 사찰.
지정번호 전남문화재자료 제40호
지정연도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임포 산 7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이 절은 화엄사의 말사(末寺)로 금오산(金鰲山)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는 중생이 서원에 감응했다는 감응도,
앞바다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가 있다.
향일암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659년(의자왕 19)에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었다는 내용이 《여수군지》 및 《여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950년(광종 9)에 윤필(允弼)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인 1713년(숙종 39)에 당시 돌산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한 지 3년 뒤인 1715년에
인묵(仁默)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이라고 명명하였다.
분류 사찰건축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 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昌枋)이 얹혀져 있으며 헛첨차를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주심포계이며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다.
대웅전 안에는 1987년에 조성한 청동석가모니불과 관음·지장보살이 있다.
1988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와 금니(金泥)로 채색한 신중탱화,
1983년에 만든 소형 범종 등도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은 대웅전 뒤쪽으로 50m 떨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계이며 바람막이판이 달린 맞배지붕이다.
1991년에 조성한 관음보살상과 관음탱이 있고,
관음전 옆에는 석조관음보살입상과 동자상이 있다.
대웅전 뒤에 있는 일명 흔들바위는 경전을 펼쳐 놓은 듯한 형상인데,
이 바위를 한 번 흔들면 경전을 사경한 공덕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돌산갓김치, 고들빼기김치, 유자, 매실장아찌 등을 비롯해 젓갈,
반찬, 굴, 고막, 전복, 건홍합같은 특산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