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향기.
가끔 잠이 안 올때 티비체널을 쭉 돌려보다가 우연하게 마주치는 반가운 영화가 있다.보려고 했거나 보고싶었거나 놓쳐버렸든 것들.
며칠전 새벽 2시경에 만난 체리향기도 이게 웬떡이냐 했었지.국제영화제에서 놓쳤든가 하여튼 아쉬웠었는데 덕분에한숨도 못잤고 다음 날 남의 결혼식에 가서 졸기도 하고.
압바스 키아르스타미이란의 영화감독.각본 감독 제작 모두 했다.
97년 깐느 영화제에서 이란 정부의 출국금지 주인공 바디.
조치로 출품되지 못하다가, 폐막 3일전,이 영화의 상영 공고가 붙으면서 공식 경쟁작의 명단에도 없었고,
영화제 공식 책자에도 실리지 않은 영화가 출품되기도 했는데
결국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 아톰 에고이앙의
<달콤한 내세>, 이안의 <얼음폭풍>을 제치고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으면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1994년 <올리브 나무 사이로> 이후 3년 여의 공백기
만에 발표한 작품이며 키아로스타미가 직접 제작까지 맡은 첫 영화이다.
한 남자가 자동차를 몰고 황량한 벌판을 달려간다. 그는 지나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며 자신의 차에 동승할 사람을 찾는다.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수면제를 먹고 누운 자신의 위로 흙을 덮어 줄 사람.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그의 간절한 부탁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애띤 얼굴의 군인도, 온화한 미소의 신학도도 죽음이란 단어 앞에선 단호하게 외면할 뿐.
드디어 한 노인이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박물관에서 새의 박제를 만드는 노인은 주인공
바디(Mr. Badii: Homayon Ershadi 분)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며 작지만
소중한, 삶의 기쁨들을 하나씩 펼쳐 놓는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 듯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끼는 바디.
운동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도시의 하늘 너머 펼쳐지는
저녁노을의 눈부신 빛깔. 밤이 오고 바디는 수면제를
먹고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 안에 눕는다.
조금은 긴장된
그의 얼굴 위로 푸른 달빛이 서리고. 때맞춰 내리는 비.
사방은 온통 어둠뿐. 가끔씩 치는 번개의 빛에 그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간 사라지는데. 아침이 오면 그는 그토록 바라던 죽음을 얻게될까?
다시 생에 대한 애착을 느낀 주인공은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떠나는 것으로끝난다.
그 노인이 자살 직전 한웅큼의 체리를 맛보고 따다가 아내에게 갖다주고하면서 삶의 의욕을 되찾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한편의 수필이나 다큐를 보는듯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인 풍경. 절제된 대화. 드라마틱하지 않으나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영화. 긴 여운이 남았다.
요즘 자살하는 분들,
누군가가 붙들어줄수 있으면 좋으련만.